"한국난계 變해야 산다"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蘭 역사와
(2021.2.16일 현재 사이버蘭전시회에 6.040점을 전시중입니다)
▲ 한국춘란 황화소심 '보름달' 한국춘란 원판소심 '단원소' 한국춘란 주금소심 '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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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수집
수집(蒐集)은 인간의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는 본능이다. 아기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이고, 가장 먼저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내꺼야’라고 한다.
그 만큼 인간은 물건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수집에 대한 본능은 신분의 높고 낮음, 부(富)나 나이, 배움의 정도 등과는 무관하다. 어찌 보면 이러한 본능이 인류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취미는 대부분 수집, 즉 컬렉션(collection)이다. 우표, 음반, 고서화, 미술품, 곤충 등 수집을 취미로 하는 종류는 실로 다양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와 같이 수집 그 자체가 취미인 경우도 많지만, 수집 자체가 취미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취미는 취미와 관련된 물건을 모으게 된다.
이러한수집 활동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갖는다. 역사의 훼손을 막고 보존하기 위한 것, 수집으로 재테크나 소득창출을 위한 것 등의 기능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취미계에는 동호인 간에 진귀하고 희귀한 것을 소장하는 자가 우월감을 갖고 만족감을 갖기에 수집에 혈안이 된다.
난(蘭) 취미인들도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희귀품종을 가지고자하는 욕망, 가짐에 따른 만족감을 갖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난인들이 난을 모으는 것은 다른 수집과는 또 다른 차원도 있다. 남보다 먼저 품종을 수집하고, 이를 번식해서 배양소득을 올리려는 것을 더 큰 목적으로 하는 난인들도 꽤 많다. 취미를 넘어 농업적으로 난을 하는 경우는 더욱더 그러하다.
'수집(蒐集)'의 한자 수(蒐)는 풀 속에 귀신이 숨어 있는 모양을 가리킨다고 한다. 귀신을 찾듯이 찾아 모은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옛사람들이 수집을 미술품을 아는 마지막 경지로 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조선 정조 때 학자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은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으로 감상하게 되며, 감상하다 보면 수집하게 되니, 수집은 그냥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동양사에서 미술품 욕심이 가장 컸던 사람은 중국 당태종(唐太宗)일 것이다. 서성(書聖) 왕희지의 작품을 유난히 사랑했던 그는 지상에 남아 있는 왕희지 글씨를 2000점 넘게 모았다.
그러나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있었다. 왕희지의 걸작 중 걸작으로 전해지는 서첩 '난정서(蘭亭序)'였다. 당태종은 수소문 끝에 소장자를 찾아냈다.
그를 황궁으로 불러 구슬러도 보고 협박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태종은 결국 사람을 보내 '난정서'를 훔쳐 오게 했다. 곁에 놓고 아끼고 어루만지다 죽을 때가 되자 자기 관(棺)에 넣게 해, 저세상으로 가져갔다.
우리나라 근대 서화가이며 수필가인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은 당태종의 이러한 수집에 대하여 〈골동설(骨董說)〉이라는 글에서 "조선의 그 많은 수집가들은 과연 어떠한가. 한 폭의 서화를 소유하기 위해 제왕의 위엄까지 희생시킬 용의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어느 분야든 오랜 기간 간절하게 다가서면 반드시 남다른 결과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난 취미인들은 유달리 남이 갖고 있지 않은 품종을 먼저 갖고자 한다. 한국춘란만 해도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산에서 원종이 자꾸 발견되어 나오니 난초마니아들은 안테나를 세우고 여기저기 정보를 수집해서 귀한 품종을 먼저 갖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산채를 하는 사람은 그들대로, 난을 구입하는 사람은 그들대로, 형편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수집에 열을 올리기는 마찬가지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난초수집에도 끝이 없다.
이것으로 만족해야지 하고는 그 난(蘭)을 내손에 넣고 나면 또 갖고 싶은 난이 보인다. 난인이라면 어느 정도는 난 욕심이 있어야 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 욕심을 다 채울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절제하고 절제하면서 만족해가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즐거움이 생길 자리가 만들어진다.
난을 오래한 사람이면 한두 번 난에 미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난에 미쳤을 때라함은 난 수집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을 때이다.
오래된 난인들은 자신이 난에 미쳐있던 때를 회상하면서 추억에 젖어보곤 한다. 난인이라면 누구나 말 못할 여러 가지 안타까운 과거가 있었겠지만 크게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부산의 C애란인은 ’97년 겨울 거금도에 난을 채집하려고 꼭두새벽에 부산을 출발, 거금도로 가는 배의 출항시간을 맞추려고 가속으로 달리다가 고흥의 꼬불꼬불한 비탈길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혼비백산되었고, 갈비뼈 3개가 부러졌다.
현지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거금도 난(蘭)이 어찌나 눈에 아련하든지 기브스를 한 채로 거금도로 산채를 갔다 왔다고 한다.
또 부산에 사는 P애란인은 좋은 산채품 난초를 구입하려고 부인과 같이 주말마다 전라도로 내려갔다. 한번은 밤중에 함평까지 달려갔는데, 눈을 만나 눈길에 차를 세워두고 차안에서 꼬박 하루를 붙잡혀 있는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그 다음 주에도 산채품 명품들이 하도 눈에 아른거려 고생 따위는 잊어버리고 또 다시 광주로 달려갔다고 하니 이것이 난초에 미친 사람들의 모습이다.
난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 중에는 많은 부분이 난초 수집에 얽힌 이야기이다. 난인들은 난초수집에 미친 이야기를 다들 몇 건씩은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난인들만이 가지는 애뜻한 추억이고 난인의 세계이다.
나도 난에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난꽃 하나를 보기 위해 밤중에 부산에서 함평, 광주, 석곡 등지로 밤을 꼬박 새며 갔다 와 바로 출근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토‧일요일에는 어김없이 길도 없는 야산을 굽이굽이 휘졌고 다닐 때는 꼭 난(蘭)에 홀린 사람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한창 산채품이 많이 채집되던 90년도 초‧중반에, 상인들은 전라도나 진주지방에서 제법 괜찮은 품종의 난을 입수하고는 부산으로 오면서 밤중에 연락을 한다.
아무리 늦은 밤이라 해도 만나서 난을 구경한다. 이 때 마주한 대부분의 난은 수준이 미흡하지만 가끔은 마음에 드는 난이 보이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구입하지 못할 때에는 마음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
난인(蘭人)들 중에는 난초 배양을 잘 못하면서도 난에 욕심만 앞서 귀한 품종을 소장하다가 절종(切種)시키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본인에게도 손실이지만 귀한 자원을 없앤 것이니 국가 차원에서도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난은 없어지고 애달픈 이야기만 남는다. 한국춘란에서 원예적으로 우수한 품종을 개발하고, 하루속히 번식하여 원예상품화 하는 것이 난인들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난(蘭)은 그것을 좋아하고 진정 즐길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가져도 되겠지만, 촉수가 적거나 배양이 어려운 상태라면 배양을 잘하는 고수가 기르도록 해서 절종이나 퇴보를 막아야 할 것이다.
난(蘭)을 오래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난(蘭)은 인연초다’라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생기고 소멸하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보고, 생멸에 직접 관계하는 것을 인(因)이라고 하며, 인을 도와서 결과를 낳는 간접적인 조건을 연(緣)이라 한다.
난초를 오래하다 보면 난초는 인연 따라 움직이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명품 반열에 해당하는 난(蘭)은 우여곡절을 거쳐 그 난과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을 많이 본다.
명품 난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저마다 인연에 따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자신과 인연이 있는 난은 잘 배양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난은 가지고 있어도 죽든지 배양이 잘 되지 않는다. 대주를 키우던 사람으로부터 뒷발브 하나를 분양받아 간 사람이 대주를 잘못 키운 사람에게 거꾸로 분양을 해주는 경우도 많이 본다.
난인들 사이에는 인연초와 함께 난복(蘭福)이란 말을 많이 한다. 산채를 잘하는 채집에 복이 있는 사람, 명품을 잘 만나 구입 복이 있는 사람, 배양이 잘되는 키우는 복이 있는 사람 등 난 복도 여러 가지이다.
산에서 난초 채집을 많이 해본 분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난은 인연이 있어야 만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인연이 없는 사람이 지나간 뒤에 따라가는 사람이 명품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뜻하지 않은 코스에서 우연히 좋은 난을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난인들은 인연초니 난복이니 말하지만 그 무엇도 난을 수집하는 열기를 식히지는 못한다.
난초마니아들은 마음에 드는 난초를 만나면, 내일 당장 땟걸이가 없어도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 난초라고 말한다. 난인들은 난초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이 매우 강하다.
특히 남이 가지지 못한 품종을 가지려는 욕망이 크고,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지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 실제로 난인들은 난초구입에 대한 만족감과 즐거움이 다른 어떤 것 보다 크다고 말한다.
난 구입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난인들도 많다. 남편의 난 구입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가계를 어렵게 하다 보니 부부간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난인들이 부인에게 거짓말을 한다. 난우(蘭友)로부터 얻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실제 구입가격의 1/10정도에 샀다고 얼버무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부인들도 소문을 듣기도하고 돈의 흐름을 눈치 채고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그친다.
부산의 어느 난인은 퇴근 시에 난(蘭)을 가지고 집에 가면 부인이 하도 신경을 쓰길래, 대문 앞에 두고 들어갔다가 밤중에 살짝 나와 가지고 들어가는 방법으로 위기를 피했다고 한다. 한번은 고가품을 두었다가 나중에 가지러 나와 보니 누가 가져가고 없어졌더라는 것이다.
어떤 난인은 난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인을 꼬드기기 위해 난(蘭) 한 화분을 팔아서 옷 한 벌을 사줬더니, 다음부터는 난을 아주 귀하게 여기고 난 관리에 협조도 잘 하더라고 알려준다.
난인들의 난실을 방문해 보면 대부분 난이 난대를 꽉 채우고 있고, 나름대로 다양한 품종을 갖추고 있다. 본인이 직접 산채한 난, 돈을 주고 구입한 난, 난우들과 서로 품종을 교환한 난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본인이 아끼고 남들에게 자랑하는 난은 몇 종류가 안 된다. 난인들은 자기가 귀하게 아끼는 품종을 소개하면서 자랑한다. 귀한 난 수집에 얽힌 이야기도 늘어놓는다.
귀한 난 품종을 수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난인들은 대부분 난의 귀한 정도를 알고 있으며, 스스로 귀하다고 생각하는 난은 선뜻 팔려고 내 놓지 않는다.
내가 입수한 난 중에도 원 소장자로부터 구입하는데 어려움과 함께 사연이 많은 것이 몇 품종 있다. 어떤 품종은 내놓지 않다가 배양 실패로 절종의 위기에 처해서야 양도받았다.
내가 이렇게 입수하여 키우고 있는 난(蘭)에는 홍화소심 ‘홍로’, 홍화 ‘혜련’, 남해 산 무명 황화소심, 무명 단엽산반, 무명 화형소심 등 아주 귀한 품종들이 있다.
참으로 귀한 난을 어렵게 입수해서 집으로 돌아 올 때 그 기분은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신바람이 난다. 그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난을 오래한 사람들마저도 난을 구입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생물이고 원예품 이기 때문에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고, 이익이 되는 품종만 구입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안목을 키우고 능력에 맞게 수집해야할 것이다. 난인들이 갖고 싶은 난은 종류별로 매우 다양하므로 꼭 이것이어야만 된다는 것은 없다. 갖고 싶은 난이 없어서가 아니고, 조금만 정보를 수집해보면 난은 있는데 자금여력이 모자라 애태우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자금을 아끼면서 천천히 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우선 배양 실력을 길러 가면서, 내 스스로 능력을 갖추면 언제라도 그에 합당한 난은 나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느긋한 생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난초수집 욕구는 참으로 조절하기 어렵다. 절제하고 절제하면서 천천히 슬기롭게 해 나가는 것이 왕도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