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詩 > 이성보 칼럼, 詩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성보 칼럼> 짐과 말
기사입력  2019/05/27 [00:45]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 일본한란 소심 백묘     ©김성진

 

짐과 말

 

무술년도 끝자락에 와 있다.
노이무공(勞而無功), 자영업자들이 가장 많이 고른 올해의 사자성어다. 해마다 선정되는 사자성어는 촌철살인의 묘미를 가지고 있기에 관심을 끈다.


노이무공은 장자 ‘천운편’에 나오는 말인데 갖은 애를 썼지만 보람이 없다는 것으로, 어쩜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 놀라웠다.


사자성어 대신 한 글자로 올해를 정리한다면 KTX 탈선이며 탈원전의 부작용 등으로 해서 ‘탈’자가 꼽히는 모양이다. 이 ‘탈’자 또한 몸의 여기저기가 삐걱되어 탈이 나고 보니 나와 무관하지 않아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탈이 난 몸인지라 자리보전하는 때가 많아졌다. 병석에서 잔뜩 짊어진 짐을 내려놓을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두 갈래길 고향 마을 입구에는 우람한 팽나무 두 그루가 마주 보듯 서있었다. 고향 사람들은 이 두 그루를 암수나무라 불렀다. 이 두 고목은 누가 심었는지 수령조차 짐작이 안가는 노목이었다.


해마다 정월 초이튿날엔 온 동민이 정성으로 동제를 지냈는데, 으레 동구에 서 있는 팽나무에 온통 새끼 금줄을 치고 흰 창호지를 잘라 사이사이에 끼웠다. 이 팽나무는 축수의 대상만이 아니라 내 고향의 수호신이요,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이 먹고 견디는 장사가 없다고 하더니 이 팽나무도 한 줄기 두 줄기 생명을 잃어가다 수년 만에 고향에 들렸더니 암팽나무가 보호수란 팻말만 남겨둔 채 자취를 감추었다. 팽나무가 짐을 내려놓았다는 생각이 난 것도 이때였다.


조물주가 사람을 점지할 때 무거운 짐을 감당하도록 미리 든든한 양 어깨를 만들었고, 짐을 안으려고 넓게 가슴을 만들었는가 하면, 짐을 이라고 머리를 위에다 두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서만 지는 게 아니라 앉아서도, 누워서도, 잘 때도 벗어 팽개칠 수 없는 것이 짐이다. 심지어 죽을 때에도 벗을 수 없어 유언으로 남기고 떠나는걸 보면 저승에까지 가져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짐을 사전에서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챙기거나 꾸려 놓은 물건, 맡겨진 임무나 책임, 수고로운 일이나 귀찮은 물건’이라 풀이하고 있다. 짐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이고도 정신적인 것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제 힘에 겹게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빈손이라지만 짐을 지고 태어났고, 빈손으로 갈 때에도 짐을 벗지 못한다. 짐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야말로 짐덩어리다.


짐을 많이 진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을 감당한다는 말이요, 어려운 일을 잘 감내해 낸다는 뜻이다.

 

난계에도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크고 작은 난단체의 임원들이다. 짐은 그 무게만큼 시련도 많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의 시련은 대부분 입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주변에서 성숙치 않은 말들로 해서 많은 것을 잃은 사람들을 어렵잖게 보고 있다. 때론 술김에, 때론 우쭐하는 마음에서, 때론 헛되거나 어줍잖은 공명심에서 순간적인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말실수를 하는 경우가 잦다. 물고기가 입을 잘못 놀려 미끼에 걸리듯, 입을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한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천수경의 맨 앞 구절이다. 우리가 입으로 지은 온갖 죄를 깨끗이 하는 참다운 말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에서는 타우라스산 (Mount Tauras)을 넘는 두루미를 인용하여 쓸데없는 입놀림으로 화를 당하지 않도록 오래 전부터 경고하고 있다.

 

터키 남부에 있는 타우라스산은 꼭대기에 독수리의 집단 서식지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곳은 그들의 먹잇감인 두루미의 이동로이기도 하다.


이 독수리들은 험준한 타우라스산을 넘어가는 두루미들을 공격해 배를 채운다고 한다. 독수리의 먹잇감이 되는 두루미는 시끄럽게 우는 놈이다. 편대의 뒤쪽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시끄럽게 우는데, 이 우는 소리가 독수리들에게 먹잇감을 알리는 좋은 신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노련한 두루미는 거의 희생을 당하지 않는다. 노련한 두루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입에 돌을 물고 하늘로 날아오른다고 한다. 주둥이를 잘못 놀렸다간 독수리의 먹이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고 했으니 말을 적게 하고 볼 일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도 말을 적게 하는 한 방법이지 싶다.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은 말을 배우는 데는 3년이 걸렸지만 남의 말을 듣는 데는 60년이 걸렸다고 했다.


사람이 지닌 향기는 그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말을 함에 있어 한결같이 진솔함을 유지하여 섣부른 입방정을 삼가야 하리라.


굳이 말을 잘할 필요는 없다. 비록 어눌하다 할지라고 진실을 담은 말이라면 상대는 감동한다. 입口자가 세 개 모이면 품수品자가 된다. 말이 곧 그 사람의 품격이다. 적어도 애란인이라면 품격 있는 말을 하였으면 한다.

 

욕과심청(慾寡心淸)이라 하였으니 욕심이란 짐을 들어낸 맑은 마음으로 황금돼지해라는 己亥年을 맞이하자.


병석에서 바라본 하늘빛이 오늘따라 곱다.

 

ⓒ 난과함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이성보 칼럼 짐과 말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2024 거제난연합회 봄전시회> 거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