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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봄날에 만난 사람
엊그제까지 한창이던 불두화(佛頭花)가 낙화가 되어 작은 연못을 하얗게 장식했다. 하얀 꽃잎 위로 인공폭포의 물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파문 속에 꽃잎은 일렁이고, 그렇게 봄날은 또 가고 있다. ‘여름이 온다’라고 하지 않고 ‘봄날이 간다’고 함은 봄날에 대한 정겨운 아쉬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봄날에 세 사람을 만났다. 처음 만난 사람은 분당에 사는 김득일 씨다. 그는 분당한국춘란회 직전회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해왔고, 더구나 내가 잘 아는 박광일 씨와는 교분이 두텁다고 해서 생면부지였으나 낯설지가 않았다.
또 한사람은 자보 대전지회장 류일녕 씨로 20여년 전 내가 자보에 관계하고 있을 때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 분이다. 한참의 세월이 흘렀으나 동안인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이병만 씨로 포항 영일만난우회 부회장이라며 포스코 명함을 건넸다. 그 역시 생면부지였다.
봄날에 만난 사람이 이 세 사람뿐일까마는 이들과의 만남은 ‘인간 재산’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인생살이엔 많은 종류의 재산이 있을 것이나 그 중에 사람만큼 귀한 재산이 있을까 한다.
내가 가진 인간 재산을 가늠해본다. 누군가 인간관계의 질서를 알려거든 선거를 치러보라고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배신 따위는 의당 행해지는 곳이고, 원수처럼 지내던 이들이 맞아떨어진 이해관계로 언제 그랬냐는 듯 동지가 되는 곳이 선거판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아사리판’이라 하지 않는가.
아사리의 어원은 ‘앗다(奪)의 어간 ‘앗’에 연결어미 ‘을’이 붙고 그 아래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가 더해진 ‘앗을이’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보인다. 즉 남의 것을 뺏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데 엉키어 난장판이 되는 것을 비유하여 ‘아사리판’이라고 하는데, 대선과 총선을 지켜보면서 이를 실감했다.
‘아사리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애란인들이라 나는 믿는다. 지면 관계로 김득일 씨와 류일녕 씨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이병만 씨와의 만남을 얘기해보려 한다.
어린이날이 겹치어 3일이나 된 연휴에 처제 내외를 비롯한 네 가족이 거제를 찾았단다. 나를 만나고자 거제를 행선지로 하였다고 했다. 헤어진 지 며칠 뒤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부를 물은 뒤에 애장품인 두화 계통의 명품 몇 종을 분양해주겠다고 한다.
지난 번 만났을 때 일생일란이라 여긴다고 했던 난도 그 속에 포함돼 있었다. 정중히 사양하기는 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람을 만났는가 싶어 기분이 소쇄(瀟灑)해짐을 느꼈다. 그를 두고 ‘헐은전’이란 집값이 생각났다.
고려 때 노극청(盧克淸)이란 사람이 가난하여 집을 팔기로 했다. 마침 볼 일이 있어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아내가 현덕수(玄德秀)란 사람에게 백금 열두 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
노극청이 돌아와 이를 알고 현덕수를 찾아가서 “내가 이 집을 살 때 백금 아홉 근만 주었는데, 수년 동안 잘 살았고 서까래 하나 보탠 것이 없소이다. 그러니 백금 서 근을 더 받는 것은 도리가 아니오” 하면서 백금 서 근을 돌려받으라고 했다.
현덕수는 이를 뿌리치며 지지 않았다. “그럼 자네만 의를 지키고 나는 그러지 말란 말이오?” 노극청 또한 지지 않는다.
“내가 평생 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헐하게 사서 비싸게 팔아 재물을 탐하겠는가. 만일 남은 서 근을 받지 않는다면 전부를 다 돌려보내고 내 집을 도로 찾겠소.”
이렇듯 ‘받아라, 못 받겠다’ 하고 싸우니 이를 보던 사람들이, “말세에 서로 이익을 다투는 세상인데, 이 같은 사람들을 어찌 다시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야기의 투로 봐서 노극청이 이겼을 성싶다. 새 집이 헌 집이 되었으니 팔 때에는 집값이 살 때보다 싸야 하는 것이 노극청의 의(義)요, 노극청이 가난하여 도와주고 싶은데 깐깐한 성미에 그냥 주면 받지 않을 것이니 집을 사면서 더 얹어준 것이 현덕수의 의(義)이다.
물론 물가가 올랐으니 그만큼 더 받아야 하는 것이 경제의 원리이다. 그러나 폭리를 취하지 않고 받을 만큼, 그것도 낡은 만큼은 빼고 받아야 하는 것이 옛 우리의 선조가 생각한 ‘헐은전’이라는 집값이다.
‘헐은전’이란 집값에 난값을 비교해본다. 그 비교가 사리에 맞는지는 차치하고서다. 거금을 주고 구입한 난이 촉수가 불어나 분양을 한다면 파격적인 가격에 분양을 해도 좋을 성싶다. 난값이 얼만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할는지 모르나 명품을 실컷 애완한 값을 공제하면 될 법한 일이기에 해본 말이다.
수천 만원을 호가할 난을 무상으로 분양해주겠다는 이병만 씨를 두고 나의 인간 재산이 꽤 두둑하다고 자평해본다.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란 생각에 가는 봄날을 마냥 붙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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