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졸(守拙)의 멋
600년 만에 돌아온다는 황금돼지해라고 해서 젊은 부부 사이에 정해년(丁亥年)에 대한 기대가 큰 모양이다. 더구나 나는 정해년 생으로 갑년을 맞았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남다른 감회라 함은 기대와 서글픔이 교차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월을 정월(正月)이라 한다. 정월이란 말 속엔 적어도 한달만이라도 마음을 올곧게 해야 한다는 우리 조상들의 교훈과 자정의 의지가 담겨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한번쯤은 지나온 생애를 되돌아보고 깊은 생각도 하게 된다. 거기다 어떤 신체적 한계까지 느끼고 보면 조급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흔히들 갑년이 지나 죽을 때까지의 생애를 두고 여생(餘生)이라 말한다. 여생은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내리막길엔 가속도가 붙는다. 60이란 나이를 업고 가속도가 붙은 인생길에서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어쭙잖은 말을 철석같이 믿고 어영부영 세월만 붙들고 늘어진 것이 아닌지 자꾸만 뒤가 돌아다 보인다.
짧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길기도 한 인생살이에서 뜻 하나 지니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살아간다. 대체로 죽음과 동시에 영영 잊혀지고 만다. 다만 뜻 하나 지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죽어서도 잊혀지지 아니하고 추앙을 받는다. 뜻 하나 세우고 최선을 다하고 볼 일이다. 최선을 다한 사람의 실패는 패배가 아니다. 최선은 고사하고 지레 겁먹고 도전도 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패배다.
젊은이들은 대개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영생을 하는 것인 양 착각을 하다가 40~50 고개를 넘어서면 달라진 상황을 실감하게 되고 조급함도 느끼게 된다.
러시아의 작가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은 그의 저서 「시간을 정복한 남자」에서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계속해서 줄고, 이에 반비례해 시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고 했다.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말로 새겨들어야 하지 싶다.
이곳 유리온실 안의 감귤나무에 20여 개의 감귤이 달려 있었다. 노랗게 잘 익은 것이 꽤나 먹음직스러웠다. 예년엔 익는 기색만 보여도 손님들이 그냥 두지 않더니 금년엔 제법 오랫동안 달려있어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다 따 가버렸지만, 그래도 남의 것을 아끼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난다 싶어 섭섭함이 덜했다.
감귤을 마지막으로 감이랑 석류 등 대접받는 과일들은 차례로 사라지고 나목이 된 가지 끝에 노오란 모과 몇 개만 계절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 빛깔이며 향에 비하여 과일전을 망신시킨다는 못생긴 모양새 하며, 딱딱한 육질에 얼굴 찡그리게 하는 신맛 때문에 괄시를 받는 모과다. 하지만 모과는 제 몸에 지닌 향기를 제 몸 담은 그릇에까지 오래 남긴다고 했다.
모과를 보다 수졸(守拙)이란 말을 떠올린다. ‘수졸’은 자전엔 옹졸한 줄 알면서도 그 졸한 것을 고치지 아니하고 지금 처해있는 분복(分福)에 만족함이라 적혀있다.
노자 도덕경 45장에도 졸(拙)이 나온다.
크나큰 채움은 텅 빈 것 같지만 아무리 채워도 빈 곳이 남아 채울 수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크나큰 기교는 치졸한 듯하다. 가장 잘하는 말씀은 어눌한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차디참이 뜨거움을 이긴다. 그래서 맑음과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른 것이 된다.
여기서 관심있는 대목은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치졸한 듯하다. 가장 잘하는 말씀은 어눌한 듯하다(大巧若拙 大辯若訥)’라는 부분이다. 교묘함의 극치는 마치 치졸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서예에 있어 그냥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고 비록 기교가 없고 서툴러 보이나 고아(古雅)한 멋이 보이는 고졸(古拙)한 것에 더 아름다움이 있는 것과 같다.
추사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3일 전에 쓴 ‘板殿(판전)’이란 글씨와 초의선사에게 써준 ‘茗禪(명선)’이란 글씨는 서툴고 어눌한 필체로 하여 최고의 경지로 여기는 것과 같다.
바둑 초단의 별칭이 수졸(守拙)이다. 참된 기도(棋道)정신을 우직하게 지키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수졸은 명분(名分)을 지키는 일과 같다. 명분은 도덕상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의 본분을 일컫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름에 따른 실질적인 직분을 말하기도 한다.
관리전도(冠履顚倒)란 말이 있다. ‘갓과 신발이 거꾸로 놓이다’라는 말인데 앞뒤의 순서를 거꾸로 바꾸어 사물을 그르치는 일을 비유해서 나온 말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뒤집힌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갓은 아무리 낡아도 머리에 쓰는 것이고, 신발이 아무리 새것이라고 해도 머리 위에 얹어 쓰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하수상하다 보니 돈으로 인하여 가치관이 도치(倒置)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듯 옛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졸(拙)을 실천하는 기록들을 많이 남겼다. 졸(拙)함을 지키려면 바보천치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부끄러움을 간직하는 일, 그것이 졸함을 지키는 일이라고 선인들은 지적하고 있다. 당장의 큰 이익이 눈앞에 보여도 안될 길은 가지 말라고 했다. 잠깐 눈을 감으면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자신만은 속일 수 없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길을 굳이 찾아가는 길, 그 길이 바로 수졸(守拙)의 길이요, 애란인의 길이 아닌가 싶다. 정해년엔 애란인 모두가 수졸의 멋을 아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