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난계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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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守分)의 즐거움
계속되는 가뭄으로 바닥이 들어난 저수지의 몰골이 을씨년스럽다. 거기다 주변의 억새까지 산발하고 보니 처연하기조차 하다.
가뭄 탓인지 이곳 예술랜드 입구의 팽나무 잎새가 노랗게 물들지 못하고 노리끼리한 채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요 며칠 사이엔 후둑후둑 빗방울이 내리듯이 쉴 새 없이 쏟아지듯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낙엽을 쓸어 보았으나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엔 수분 함유가 생명유지에 절대적이다. 땅이 얼어붙어 뿌리로부터 물의 공급이 줄어들면 물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러기에 나무가 나무이기 위한 가장 존엄한 상징인 잎사귀를 떼어내는 고통을 자행하는 것이다.
일조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저하되면 엽록소가 파괴된다. 이로 인하여 녹색이 사라지고 대신 황갈색이나 붉은색으로 물이 드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겨울나기를 위하여 칼슘이나 규소 등 불필요한 영양분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도 지혜로운 생존방법인가.
차량 몇 대 분량의 잎을 떨구어낸 입구의 팽나무는 16년 전 굵기가 내 몸통보다 적은 놈을 머잖은 곳에서 옮겨 심었는데, 어느 새 두 아름 가까이 굵어졌다. 굵어진 만큼 잎사귀의 양도 많아졌는데, 그 많은 잎사귀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떨어뜨린 셈이다. 잎을 다 떨군 팽나무의 가지를 보다말고 ‘99섬 가진 자가 남이 가진 1섬마저 빼앗아 100섬을 만들어야 욕심이 끝이 난다’는 옛말을 떠올렸다.
가지면 가질수록 탄력이 붙는다는 탐욕, 그 탐욕은 ‘쌀 소득 보전 직불제’라는 엉성한 제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좋은 제도는 나쁜 인간도 좋게 만들고, 나쁜 제도는 좋은 사람도 나쁘게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어설프고 설익은 졸속 지원제도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쌀 소득 보전 직불제는 논농사의 중요성을 인식해 만든 제도다. 논농사를 통하여 국토와 환경, 생태, 수자원이 잘 보전, 정화될 뿐만 아니라 홍수조절이나 농촌경관유지 등 헤아릴 수 없는 공익적 기능으로 연 23조원이나 되는 혜택을 얻으므로 쌀농사의 생태 환경적 가치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이 풍요롭고 쾌적해진 그 가치가 크므로 해서 농업인에게 주어지는 보상인 것이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 했건만 농촌에 살지도 않으면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소작료를 받아가는 것도 가난한 농민들에겐 눈살을 찌푸르게 하는 일이다.
토지는 조상한테 물려받기도 하지만 그 지역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재산증식의 방편이나 개발 가능성 등으로 토지를 사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공직자나 선량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마련한 자기소유의 토지에서 편법으로 직불금을 받아 챙긴 것은 파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직불금 몇 푼을 타기 위해서 마을 이장에게 자경확인서라는 허위 문서까지 떼어 달라고하였다니,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유분수다.
이 모두가 분수를 모르고 이익만 추구한 결과다. 분수는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로 제 신분에 걸맞는 분한(分限)이다.
분수를 모르는 지나친 욕심은 결국 제 무덤을 파고만다.‘안영(晏텊)의 호구(狐퐐)’라는 말이 있다. 안영은 기원전 중국 제나라 사람인 안자(晏子)를 가리킨다.
그는 제나라 영공, 장공, 경공 3대를 섬기면서 근면한 정치가로서 백성의 신망을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얼굴이 못생기고 오척 단구였다. 난으로 치면 꽤나 품종이 좋은 단엽종인 셈이었다. 하지만 중국 5천년 역사에서 최고의 정치가로 꼽히고 있는 관중(管仲)과 견줄 만한 훌륭한 재상으로 기억력이 뛰어난 독서가였으며, 합리주의적인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호구(狐퐐)란 여우의 옆구리 밑쪽의 휜 모피 부분으로 만든 옷을 말한다.
안영은 높은 관직에 있었으면서도 한 벌의 호구를 30년 가까이 입었고, 생활에 있어서도 근검절약하여 모은 재물을 유능한 인재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오늘 날에도 분수를 알고 근검한 사람들을 가리켜 ‘안영의 호구’ 또한 ‘일호구(一狐퐐) 30년’ 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안자춘추(晏子春秋)는 그의 저서로 전해지나 후세에 편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