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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철 난인의 詩> 이슬
기사입력  2020/01/23 [00:47]   육근철 공주대 명예교수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2020.1.22일 현재 : 난관련 자료 11.543건이 DB화 되어 있습니다)

 

 

 

▲ 석곡 황화 호박전     ©김성진

 

 

언어는 짧고 침묵은 하염없이 긴 넉줄시

 

이슬

 

                                                                    -  理石 육근철  -

 

보이니

천의 눈동자

난잎에

맺힌 사연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보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진짜 보는 것이다. 한 분의 난을 볼 때 난잎만 보지 말고 난잎 사이 허공을 보라. 그 빈 하늘엔 천사의 눈이 있어 그대를 보고 있음을.

러시아의 시인이며 사상가인 레온 셰스토프(Shestov, Lev.)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죽음의 천사가 육체에서 영혼을 거두러 지상에 내려왔다가 아직 거두어 갈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었을 때 두 개의 다른 눈을 주고 간다 한다. 그 두 개의 눈은 새롭고 낯선 것 만 보게 된다. 그러므로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때문에 창작을 해낼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묵란(墨蘭)//천 개의/시린 눈동자/날 보라/눈짓하네

 

허공이 난잎을 살짝 잡아당기면 난잎엔 싱그러운 눈썹달이 뜨고, 차가운 눈매가 되어 이 아침 당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특히 창작의 길목에서 서성이는 시인이나 작가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기쁨이라는 시에서 난을 이렇게 노래했다. “난초 화분의 휘어진/이파리 하나가/허공에 몸을 기댄다//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보듬어 안는다//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잔잔한 기쁨의/강물이 흐른다. 시인은 남들이 모두 난잎을 보고 있을 때, 허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인간은 마음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한다. 우리의 마음 거울이 빈 허공처럼 청정할 때 비로소 난잎 사이 빈 허공의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 거울 닦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gdyuk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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