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蘭 역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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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考
계절은 어느 사이에 정유년의 끝자락에 와있다.
사람들은 천체 운행의 법칙에 따라 한해를 한주기로 삼고, 그 한주기를 다시 열두 달로 나누었다. 12월은 한 주기의 마지막 달이라서인지 너나없이 감회가 유별나다.
하루의 끝, 한 달의 끝에서는 그렇지 않으나 연말이 되면 여러 갈래의 생각이 오간다. 그 중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것은 모르긴 하나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생각이지 싶다. 나이를 더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수명이 단축된다는 것으로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 아니 매시간마다 수명이 줄고 있다고 의식하면 초조하여 마음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 길래 12월 들어 한 번 크게 세월의 흐름에 줄을 긋고, 서둘러 보기만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어쩌다 기뻐하기도 하는가 싶다.
다행히도 인간에겐 건망증이라는 고마운 증상이 있어 일상에서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잊게 된다. 그러나 섣달이 되면 그렇게 태평일 수만은 없다. 무엇인가 못다 한 일이라도 있으면 부족한대로 매듭짓고 새해를 맞고자 한다. 그래선지 12월은 어수선하고 바쁜 달이 되었다.
일본 사람들은 12월을 ‘시하스(師走)’라고 부른다. 글자 그대로 점잖은 스승도 달려야 하는 달인가 하였더니, 스승이 아니고 스님이란다. 스님이 해를 넘기기 전에 액을 풀어야 하기에 이집저집 달려야 한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이렇게 달리다 한해의 막이 내리니, 옛사람의 글귀를 빌면 ‘홀세모어인간(忽歲暮於人間)하니 가련금일(可憐今日)’ 그대로다. 그런데 바쁘고 수선을 떠는 것은 인간뿐이지, 자연은 조금도 서두름이 없다. 천체 운행의 법칙에 따라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12월은 어둡고 춥고 얼어붙는 계절, 지상에서 생기는 차츰 사라지고 하늘과 땅은 잿빛 일색이다. 이런 하늘 밑, 땅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사는 자연히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학 작품에서도 12월은 맑은 날보다 어두운 날이 많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의 주인공들, 넓은 세상에 부부는 단 둘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선물을 교환하고파 남편은 그 귀중한 회중시계를 팔아 한 세트의 빗을 사고, 아내는 금발머리를 잘라 시곗줄을 샀다.
선물을 주고받고 펴 보니 이제는 쓸모없는 물건임을 알게 된다. 이 조그만 불행한 일은 겨울 탓은 아니다. 크리스마스가 겨울철에 끼었을 뿐이다. 어쨌든 연말에 일어난 일이다.
또 같은 작가의 ‘마지막 잎새’의 여주인공인 무명의 여류화가 존시는 11월에 무서운 폐렴에 걸려 12월을 넘기지 못할 뻔하였다.
오 헨리는 이 착한 사람들을 비극의 구렁에 몰고 가기가 안쓰럽던지 살짝 비켜갔다. 그렇긴 하나 이 또한 연말에 있었던 불행이다. ‘12월은 천천히 흘렀다. 그 검은 달, 한해의 맨 밑바닥의 어두운 구멍인 12월’이라고 모파상은 ‘여자의 일생’에 적어 넣었다.
지난날 나의 12월은 하나같이 먼지 낀 거울처럼 암울했다. 잔광을 헤아리는 올해의 12월을 맞는 감회도 헤아려 보았다. 들먹이고 싶지도 않은 황달이 재발하여 급히 찾은 병원에서 보호자가 있어야 한단다.
간 수치와 황달 수치만 높을 뿐 멀쩡하다 하였더니, 고령에다 높은 간 수치로 해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반드시 보호자 있어야 한단다. 간 수치야 혈액 검사에서 나온 결과이니 할 말이 없었으나, 고령이라는 말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이를 잊고 살아온 지난날이련만, 내가 이렇게 늙다니, 황달도 황달이려니와 늙음의 서글픔이 함초롬히 밀려왔다.
12월에 서글픈 일은 또 있었다. 지난 11월 말일이 음력으로 내 생일이었다. 카톡에서 생일 메시지가 떴다며 북경에서 김진석 형이 축하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90년대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렸던 필자의 난석전에서 함께 찍은 사진도 곁들였다.
입석의 큰 석부작과 김 형의 난판화 작품 앞에서의 사진이었다. 그때의 사진을 여태 보관하고 있었다니, 콧날이 시큰했다. 더구나 40대 초반과 30대 후반의 두 사람 모습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가만히 그와의 연을 헤아려 보았다.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었다. 허무란 말이, 무상이란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득 그에게 초췌한 내 몰골을 보일까 두려움이 일었다.
극한 상황에서의 자연은 여유가 없다. 오로지 극한에 맞설 뿐이다. 겨울을 피할 도리는 없다. 혹한에 맞서 춘란은 꽃망울을 키우고 새촉을 올릴 준비를 한다. 마치 어머니의 손길과 같다. 그래서 인위로 피워낸 꽃보다 자연이 피워낸 꽃이 아름답고 새촉도 튼실하다.
혹한을 이기고 새봄을 맞이하자. 훈풍은 혹한을 견딘 보상이 아니겠는가. 무술년엔 좋은 일이 있으려나. 또옥또옥 떨어지는 링거방울이 희망의 속삭임처럼 들린다. 정유년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