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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부채와 곡선
기사입력  2019/10/09 [03:56]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 풍란 '부용'     ©김성진

 

부채와 곡선

 

말복이 지났으니 가마솥더위라는 올여름의 더위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복날을 가리키기도 하는 엎드릴 자는 너무 더워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다는 의미를 담은 회의문자다. 가을이 여름집에 놀러왔다가 그 열기에 질려 넙죽 땅에 엎드려 기를 못 편다는 뜻이다.

 

여름은 더운 게 순리다. 여름답게 더워야 시원함의 고마움을 알고, 더위 속에서 곡식의 알맹이가 영그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달도 차면 이지러지나니, 폭염이 위세를 부려봤자 열흘 정도이지 싶다.

 

2019년 기해년 여름은 이렇게 지나간다고 해도 앞으로가 문제다. 기상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구는 장기적으로 뜨거워지는 추세에 있고 그 원인을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꼽고 있다. 오늘도 자동차는 쉴 새 없이 질주하고 냉방기는 잘도 돌아가고 있다.

 

40년 전인 1980년과 비교해서 지구의 온도는 약 0.8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0.8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평균 기온이 1만 더 상승해도 지구별의 미래는 극명하게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는 기후체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에, 한곳에서 가뭄과 홍수가 잇따르는가 하면 메마른 숲이 증가하면서 산불이 발생하면 대형 산불로 이어진다고 한다.

 

반세기 전만 해도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었으니 부채가 여름의 필수품이었다. 누구집 없이 부채 몇 자루씩은 있었다. 부채는 우리나라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자와 대나무란 뜻의 가 어우러진 말이다. 부채를 뜻하는 한자는 이다. 깃 우()가 쓰인 것으로 미뤄 후한의 채륜(蔡倫)이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는 깃털 같은 것으로 부채를 만들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예로부터 부채는 쓰임새가 많았다. 임하필기(林下筆記)팔덕선(八德扇)’ 이야기가 나온다. 임하필기는 조선 말엽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의 저술로 그는 고종 때 영의정을 역임했다. 팔덕선은 부채의 좋은 점 8가지를 해학적으로 말한 것이다. 즉 바람이 맑은 덕, 습기를 제거하는 덕, 깔고 자는 덕, 값이 싼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는 덕, 햇볕을 가리는 덕, 독을 덮는 덕이 그것이다.

 

요즘 들어 손풍기라는 휴대용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생각보다 바람도 세고 세기 조절도 3단계까지 가능하여 젊은 층에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선지 배터리 검증이 안된 제품이 유통되어 크고 작은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부채는 친환경적이라 위험함도 없고 전통문화의 멋진 아이콘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부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방구부채와 접부채이다. 주로 집안에서 부녀자들이 사용했던 단선(團扇)은 우리말로 둥글다는 의미에서 방구부채라 불렀다. 접부채, 즉 쥘부채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부챗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며, 한자로는 접선(摺扇)이라고 한다.

 

접부채는 더위를 식히는 데 사용되었지만 풍류의 도구로 더 많이 활용되었다. 판소리꾼이 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쓰는 부채가 바로 접부채이다. 소리꾼은 부채 하나를 펼쳐 책을 만들기도 하고, 접어 칼이나 몽둥이로 만들어 멋지게 효과를 낸다. 묵객들이 시서화를 곁들여 예술의 향취를 표출하는 좋은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이런 부채련만, 선풍기와 에어컨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부채가 곡선이라면 선풍기는 직선이다. 우리는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경쟁은 직선을 중심으로 그 우열이 가려진다. 근대올림픽의 슬로건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가 삶의 모토가 되면서 곡선적인 삶의 방식이 직선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직선으로 곧잘 내달음으로 해서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은 실종되고 도처에서 불행한 삶의 역기능과 폐해가 속출하고 있다.

 

2019,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해이다. 일본과의 대립과 마찰이 폭염만큼이나 심해지고 있어 염려스럽다. 누군가가 부채가 한국적이라면 선풍기는 일본적이라 했다. 인정 많고 그럼으로 해서 여간한 일에는 굳이 경우를 밝히려 들지 않는 불투명성, 이런 것들이 곡선적인 우리의 기질이란다. 반면 함축 있는 해학도 있지만 네모반듯한 직선적인 테두리 하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정신생리란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 하지 않던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끝내는 일본을 이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벌써 바둑에서, 춘란에서 보아 왔기에 하는 말이다.

 

난에서의 곡선의 의미를 제대로 익힐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하며 더위에 지친 심신을 추스린다.

극성스런 매미소리가 오늘따라 정겹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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