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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 한국춘란의 유래와 골빈당에 얽힌 사연
캐고만 싶어라 캐고 싶어라 이마음 / 중투도 캐고 복륜도 캐고 모두 다 / 꼭 캐야만 하니 왜 캐니 / 수많은 허탕 셀 수 없는 공탕 잊었나 / 캐고 보면 알거야 아마 알거야 / 캐고 보면 알거야 아마 알거야
기사입력  2019/09/22 [11:05]   일송 김성진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 한국춘란의 유래와 골빈당에 얽힌 사연

 

▲ 한국춘란 소심 '비목'     ©일송 김성진

 

 

    캐고 싶어라

                        - 능곡 이성보 -

 

캐고만 싶어라 캐고 싶어라 이마음

중투도 캐고 복륜도 캐고 모두 다

꼭 캐야만 하니 꼭 캐야만 하니 왜 캐나

수많은 허탕 셀 수 없는 공탕 잊었나

캐고 보면 알거야 아마 알거야

캐고 보면 알거야 아마 알거야.

 

우리나라 애란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춘란을 언급할 때면 추억도 할 이야기도 많다. 필자에게 '한국춘란'이라면 맨먼저 떠오르는게 '골빈당' 이다. '골빈당'은 말 그대로 골이 빈 사람들의 모임이다.

 

1980년대 한국춘란이 태동할 즈음, 한국춘란에 '뽕' 간 사람들이 달력에 빨간표시만 있으면 바람이 불거나 눈비가 내려도 하늘의 뜻이라며 년중 전라도 구석구석 한국춘란 채집을 다녔다.

 

그때는 서울 사당동 지하철역 옆에 큰 공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일요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행들과 만나 전용 봉고를 타고 정읍으로 출발했다. 7시경 정읍에 도착하면 버스터미널 근처 단골 터미널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준비한다. 

 

그리고 명품이 나왔거나 나올만한 장성, 함평, 정읍, 고창, 고흥, 영광 등 전라도 야산을 이잡듯이 뒤지고 다닌다. 오후 5시경 지정장소에 집합한다. 각자 그날의 수확물 품평회를 하고 장원을 뽑아 장원주를 차에 싣고 귀경한다. 물론 90%는 공탕이다.

 

당수는 지금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이며 시조시인인 능곡 이성보 선생, 사무총장은 현재 인터넷난신문 '난과함께' 발행인이고 당시 경남은행 차장이었던 필자, 당원은 국민투신 김문진 상무, LG그룹 J이사, 현재 (사)한국난보존협회 이사장인 단국대 최병구 교수, (사)한국난보존협회 허점길 고문, (사)한국난문화협회 원종남 자문위원 등은 골수당원이고 왔다리 갔다리 하는 자유당원들도 꽤 많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을 제외하고는 10명이 탈 수 있는 전용 봉고차가 항시 만원이다. 골수당원은 서로 '마포남(마누라가 포기한 남자)' 이라고 자랑질을 하는 객기를 부린다.

 

귀로에 수확이 괜찮고 장원주에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골빈당 로그송을 소리높여 부른다. 로그송은 골빈당 당수 능곡 선생이 작사와 작곡을 하였다. 얼마나 한 건하고 싶었으면 노래까지 만들었을까. 한국춘란을 사랑하고 보존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그때가 엊그제 같다. 그리움이 가득하다. 모두들 안녕하시지요.

 

한국춘란이 제대로 평가를 받고 거래가 활성화 된 지 30여 년 정도 된다. 70년 대 부터 산채를 다녔던 애란인도 가뭄에 콩 나듯이 있었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보다 난 재배역사가 100여 년 앞섰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던 시대에 경남, 부산, 제주 등지에서 일본인들이 동네사람들을 동원하여 야산에 있는 한국춘란을 채집해오면 돈을 주곤 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국춘란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 거래도 되고 한국춘란만으로 전시회를 열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같다.

  

에 꽃이 핀다 하여 춘란(春蘭)이라 부르고 우리나라 도서지방과 대륙에서 자생한다고 하여 자생란이라고 부르다가 이후 '한국춘란이라 부른다. 옛적에는 봄을 알리는 꽃이라 하여 보춘화(報春花)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보춘화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야산에서 쉽게 눈에 띄이는 친숙한 풀로 민춘란, 산난초, 꿩밥, 여달래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

 

한국춘란은 1980년 전후부터 애란인들과 전문산채인에 의하여 야생상태의 한국춘란을 채집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급속한 인기를 끌었다. 인기에는 일본 애란인들이 크게 일조하였다.

 

이유는 일본난계는 품종개발이 거의 끝난 시점이었고, 한국춘란이 일본춘란보다 원예성이 훨씬 뛰어난 것을 그들이 간파하였다. 고급품종의 종자는 눈에 불을 켜고 고가로 구입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후에 종자반출로 인한 혹독한 대가를 치루었다. 국내 애란인들도 불과 30여 년의 역사지만 잎과 꽃의 특징이 매우 다양하고 최고의 고품격 난과식물이 우리의 산야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환호작약하였다. 

 

그동안 일본과 대만, 중국난만 난인줄 알았다. 전국에서 봄과 가을에 난전시회가 150여 곳에서 열려 애란인의 심미안을 높이고 축제의 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난전시회는 난인구와 난동우회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 자생지의 한국춘란  © 김성진

 

 

 

 

 

 

 

 

 

 

 

 

 

 

 

 

자생지의 보춘화

우리나라 춘란의 분포는 남으로는 제주도에서 북쪽의 백령도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울릉도와 휴전선 근방까지 자생지가 발견되었으며, 서울 바로 아래 지방인 경기도 양평에서도 춘란이 발견되고 있다.

 

한국춘란은 온대성 다년생 식물로, 주로 전남북과 경남지방의 100~400m의 낮은 산중턱이나 야산지대에 자생하며, 높은 산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침엽수 및 낙엽활엽수나 상록활엽수의 숲속에서 나며 알맞게 햇빛이 조절되는 동향과 남향의 완만한 경사지에서 많이 자생한다.

 

춘란의 자생지는 겨울철 기온이 높고 건조하지 않는 곳이 적당하다. 소나무가 많은 동남향의 경사가 완만한 곳에 많고 특히 전남·북 지역에 많이 자생하고 있는데, 어떤 곳에는 밟히는 것이 춘란인 곳도 있다.

 

이곳에 춘란이 많은 이유는 서해안의 해양성 기후때문에 겨울에 눈이 많다. 눈 속에서 월동과 습도를 잘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자생지 여건이 비교적 좋은 곳에서 명품이 많이 발견되었다. 전남의 함평, 장성, 고창, 정읍 등에서 많은 명품이 쏟아졌으며 경남 진주, 고성, 남해에서도 사피와 단엽 등 명품이 제법 발견되어 고가에 거래가 되었다.

 

한국춘란 자생지 분포도

 

 ■ 발행인 일송 김성진 프로필

 

 

 

 

 

 

 

 

 

 

 

 

 

 

전 경남은행 부행장

()한국춘란중앙회 초대부회장과 ()한국난문화협회 초대 부이사장

전 초대 한국난등록협회 등록위원

전 대구난연합회, 포항난연합회, 경남난연합회, 경남난문화협회, 부산난대전,

대구난대전,  제주난문협 심사위원장

2007 대한민국난명품대제전 심사위원장

2007~2008 2~3회 국제동양란명품대회 심사위원장

2008~2017 대한민국난명품대제전 자문위원

2009 4회 국제동양란명품대회 울산대회장

20069~200712월 월간 난과생활<김성진 칼럼>연재와 월간 난세계

한국춘란지, 대한민국난명품대제전 등 <김성진 칼럼> 특별기고

2012~2017년 일송 김성진'전시회와 제주풍광사진 개인전' 6회 개최

블로그 '수류화개실 일송정http://blog.daum.net/ilsongkim

제주브레이크뉴스 <김성진 칼럼> 67회 연재. 제주풍광사진 120여 점 게재

현재 인터넷 신문 '난과함께' 대표제주한란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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