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전시회
'사랑에 미쳐버린 잎' 그것이 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계절은 제 시간에 봄을 만든다. 누가 시키거나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춘란은 제 나름의 특성을 보이며 사랑에 미쳐 버리기 위해 꽃망울을 올리고 있다.
올 전시회에 과연 어떤 꽃들이 우리들의 눈을 황홀하게 할는지 사뭇 그 기대로 가슴 설렌다. 기상천외의 귀품과 발군의 배양실력이 돋보인 명품들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이 계절에 풀 한 포기인들 기적이 아닌 게 없다. 그래서 3월은 기적의 계절이며 생명의 계절이고 동시에 애란인들의 계절이다. 전국의 수많은 난우회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전시회를 갖기 때문에 마치 전국적으로 일시에 꽃잔치를 하는 것 같아 보기에는 좋으나 애란인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모두들 그 나름대로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다고 여기는 날짜를 전시일로 잡는 것은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사랑에 미쳐버려 빨갛고, 노랗고, 파랗게 변해버린 잎이 바로 꽃이기에 생명 유지의 시간적 한계가 있는 법이다. 어떻게 보면 봄이란 잠시 왔다 가는 사랑의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을 앞당기고 늦추며 오래 가게 한다는 건 분명히 비자연스런 행위고 어쩌면 꽃에 대한, 사랑에 미쳐버린 생명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
애란이라는 가당찮은 미명하에 우리는 비자연스런 행동을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자행하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이번 봄 전시회도 얼마나 많은 비자연스런 행위를 인간인 우리의 잣대로 합리화시켜 명품이다 귀품이다 자랑할는지 모른다. 전국대회가 3군데나 열리고 광역시, 도 단위 연합전이 곳곳에 열리는데 가히 전국적인 난잔치라 하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야단스럽고 호화롭기까지 한 연합전에 참가하지 않는 난회들이 늘어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제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인정이 바뀌어도 인간만사란 모이며 흩어지고 흩어지면 모이는 이합집산의 순환고리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음을 보는 듯하다.
왜 그들은 각 난회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난 전시회를 다시금 새로이 시작하는 것일까. 연합전의 장점인 적은 비용 부담과 전시품의 양 및 질적인 확보 등을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그것보다 더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고 허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연합회는 적어도 10개 단체 이상의 난회가 참가해 봄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전시회의 우선 목적인 전시회 자체에만 모든 걸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같은 난회의 각 회원들 간의 화목함은 자연히 소홀해지기 쉽게 마련이다.
'누구를 위한 전시회인가' 라는 자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실제 난연합전과 전국대회는 사실상 어떻게 보면 애란인의 잔치여야 마땅하지만 관람자들을 위한 전시를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전시란 무슨 전시를 하든 간에 그 속성상 관람객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혀 애란인들의 잔치가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전시 규모가 커지고 명실공히 최고품들을 순서대로 선발하게 되면 전시회 참가자들 각 개인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소원해지게 되어 있다.
전국대회는 대회 성격상 불가피하게 그렇다 치지만 중간의 연합전은 그 자체가 필요한 만큼, 각 개별 난우회의 구성 멤버들로 하여금 소외당하는 기분을 상쇄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소속된 마산애란회도 우여곡절 끝에 2002년 회원들끼리 품평회를 한 번 하고 난 후 올해는 제17회 난 전시회를 가질 예정으로 전시날짜와 장소를 정해 놓았다. 문제는 회원들끼리의 따뜻한 인정이 오고가는 그런 전시회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지나간 옛일은 모두가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날들이어서 그런지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 연합전을 하면서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상실감과 같은 회원들 사이에도 갑자기 멀어져 버린 듯한 거리감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 사람이 들고 있는 난만 보이던 날들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점이 전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난은 누구 이름으로 출품할까요?" 겨우 10여 명 모여 앉아 밤을 새워 준비하며 이런 소리가 들려오던 그 시절이 그립니다. 그해 풍년인 회원은 흉작인 다른 회원을 위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난을 그 회원의 이름으로 출품해 주는 전시회는 향기 있는 전시회가 분명하다. 고상한 난향만이 아닌 따뜻함이 섞여 있는 향기로운 전시회 말이다.
이번 봄 전시회에는 화려하게 단장해 과시하려는 전시회보다는 인정 넘치고 향기 있는 전시회가 되었으면 한다. 동양란이란 결코 화려한 화초는 아니다. 화려하지 않기에 오히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난보다 사람이 보이는 전시회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