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난계 變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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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춘란 두화소심 '일월화' ©김효준 지역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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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 대 미 학
5월 중순의 햇살치곤 너무 따갑다. 줄잡아 달포 가까이 여름이 당겨졌지 싶다. 송홧가루에다 미세먼지, 거기에다 심심찮게 불어제끼는 돌풍까지 가세하여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계절만 수상한가 했더니 이상한 일도 생겨났다. 이상한 일이라 함은 작년에 나훈아 씨가 춘 난리부루스와 올해 윤여정 씨가 전해준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훈아 씨는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에서 열창한 테스형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윤여정 씨는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개인적인 영광을 넘어 훈훈한 인간미를 세계인들에 심어주었다.
두 사람은 65세 이상 74세 백신접종 대상자로 나와 같은 47년생이다. 47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75세, 어떤 이는 이미 늦었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나이이며, 이를테면 꼰대이다.
우리나라에서 늙은이라고 하면 직장을 그만둔 60세 이상의 사람들을 말하며, 대략 1,000만 명 정도의 꼰대들이 살고 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꼰대’를 수구꼴통으로 여기는 등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못가지고 자신보다 나이가 낮은 사람에게 예의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바로 꼰대에 해당 한다고 한다.
나는 ‘Latt is Horse’, 즉 ‘라떼는 말이야’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저 젊은이들이 쓰는 신조어인가 했다. ‘라떼는 말이야’ 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뜻으로 과거를 입에 달고 사는 꼰대를 비꼬는 말이라고 하는 것을 늦게 알았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소중하다. 더러는 잊고 싶은 과거도 있겠으나, 살아온 세월들을 존중받고 쌓아온 지식과 재능들이 존경 받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꼰대라는 말에 속상해 하거나 주눅들 필요는 없다. 꼰대라는 말 속에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지혜와 연륜이 녹아있다.
젊은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한 소중한 자산은 곧 경험이다.
경험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본 꼰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 있는 나침판이며 지혜의 보고이다.
이런 옛날이야기가 전한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눈치를 보는 속국 비슷한 시절에 어느 날, 사신이 와선 왕에게 숙제를 냈다. 답을 맞추지 못하면 많은 공물을 바쳐야 한다고 겁박했다.
출제한 숙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똑같이 생긴 두 마리 말 중 어미와 새끼 구분이고, 또 하나는 목침의 뿌리와 가지 쪽을 알아내라는 문제였다. 왕은 머리를 싸맸으나 이를 아는 신하는 없었다.
답할 날짜가 되어 궁지에 몰릴 판에 한 신하가 주춤주춤 곁에 왔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건초를 던져 먼저 먹는 말이 새끼이고, 물에 띄운 목침의 조금 가라앉는 쪽이 뿌리입니다.”
왕은 무릎을 쳤고, 사신은 감탄하며 과연 조선은 인재가 많다고 탄복했단다.
“어찌 현답을 알았는가?”
왕의 물음에 신하는 사색이 된 채로 답했다.
“전하 죽여주십시오. 저에게는 칠순이 되신 아버님이 계신데 국법을 어기고 고려장을 시키지 않은 채 골방에 모셨습니다. 저의 근심어린 얼굴을 보고 아버지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그 뒤로 왕명으로 고려장을 없앴다는 설화다.
도제식으로 철저하게 일이며 기술을 익혀야 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온라인에서 영상까지 곁들여 기술과 방법을 곧장 가르쳐주기에 꼰대의 권위는 상실했다. 그나마 현재의 위치라도 지키려면 꼰대의 6하 원칙을 암기하여 이를 철저히 피해야 한단다. WHO(내가 누군지 알아), WHAT(뭘 안다고), WHERE(어딜 감히), WHEN(왕년에), HOW(어떻게 나한테), WHY(내가 그걸 왜)가 6하 원칙이란다.
장자는 이를 진작 알았기에 《莊子》 外物篇에 허유 등 권력을 거부한 자들을 소개한 뒤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나면 통발은 잊어버린다(得魚忘筌)’,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은 잊어버린다(得兎忘蹄)’, 말은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데 ‘뜻을 얻었으면 말은 잊어버린다(得意忘言)’.”
일단 목적을 달성하면 수단으로 이용하던 물건은 잊어버려야 한다. 쓰임을 다한 것을 데리고 다니면 몸도 마음도 무겁다. 베푼 은혜를 품고 다니면 서운함이 마음을 짓누르고, 뱉은 말을 담고 다니면 늘 남의 행동거지를 살핀다. 볍새는 나뭇가지에 매이지 않기에 자유롭고 구름은 머물지 않기에 한가롭다.
꼰대의 6하 원칙을 누가 지어 냈는지 기가 막힌다. 과거를 말함에 있어 제 자랑으로 비치면 꼰대라는 손가락질을 피하지 못한다.
난계를 뒤돌아본다. 나이로 보아 나처럼 꼰대라 불리는 애란인도 많다. 오늘의 한국 난계가 있기까지의 꼰대들의 역할이 어떠했는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다.
누구나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볼일이다.
윤여정 씨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노력한 결과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고, 그 올라선 자리에서 또박또박한 영어로 말한 수상소감은 겸손과 유머를 잃지 않았기에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누가 그를 두고 감히 꼰대라 하겠는가.
어른이 사라지는 세상, 또 이상한 47년생이 나왔으면 좋으련만.
◆ 이성보 난인 & 시인은
- 호는 능곡, 1947년 경남 거제 출생.
- 1989년 현대시조 등단.
- 시집 : '바람 한 자락 꺽어 들고', '난의 늪', '내가 사는 셈법',
- 수필집 : '난을 캐며 삶을 뒤척이며', '난과 돌, 그 열정의 세월',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
- 칼럼집 : '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 '세상 인심과 사람의 향기',
'행복과 지지'
- 수상내역 : 신한국인상, 자랑스런경남도민상, 현대시조문학상, 거제예술상,
경남예술인상, 한국란명품전 대상, 한국난문화대상,
- 기 타 : (사)자생란보존회 전무이사, 거제문인협회장, 동랑 청마기념사업회장 역임
- 현 재 : 현대시조 발행인, 향파기념사업회 이사장,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