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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길위에서 띄우는 편지> 제13화 '대평리 이야기'
기사입력  2024/02/03 [14:34]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한국난계 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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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련 자료 21.200점 기록보존. 조회수 6,463.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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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숙 이사장과 일송     ©김성진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대평리 이야기

13

 

 

20201231.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난 악몽 같은 한 해의 마지막 날 누구랑 걸을 것인가 며칠 전부터 생각했다. 결국 혼자 걷기로 했다. 혼자 생각하고 간절히 기원할 일이 많아서였다. 코스는 최근에 가보지 못한 올레 코스를 떠올리다가 문득 대평포구 박수기정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너르고 높은 바다 절벽 앞에서, 그 위대한 자연이 빚은 조각품 앞에서 무력한 인간으로서 자세를 한껏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싶었다.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수많은 해악을 이제 그만 용서해 달라고, 제발 코로나19를 종식시켜 달라고.

 

서귀포 구도심 동미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대평 가는 버스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버스에는 달랑 두 중년 여성만 타고 있었다(그들은 종점까지 동행했다). 외돌개를 지나 혁신도시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눈인지 비인지 구분되지 않는 눈발이 조금씩 흩날리는가 싶더니, 강정 중문을 지나면서 조금씩 굵어지다가, 월평마을에 이르자 폭설로 퍼붓기 시작했다. 거무튀튀한 과수원 돌담 위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한라산의 겨울 눈은 일상이지만 남쪽 해안가에 눈이 내리는 건 드문 일이다. 연말 선물을 받아든 기분이었다.

 

 

# 마을 풍광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박수기정만큼은 여전했다

 

버스는 폭설 속의 안덕 바닷가 마을들을 구불구불 돌아다니더니 마침내 대평리 입구에 들어섰다. 올레길 개척을 위해 13년 전 이 마을을 찾았을 때 박수기정의 위용과 더불어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한겨울에도 눈이 부실 만큼 초록으로 파릇파릇한 마농(마늘) 밭이었다. 허나 마을 입구에는 양옆으로 초록 마늘밭 대신 꽤 규모가 큰 리조트와 스파, 빌라 단지, 편의점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 그때만 해도 이름도 정겨운 대평수퍼가 유일한 간판 달린 가게였는데.

 

문득 내 동생 친구이자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호경이와 함께 대평리를 처음 찾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제주도 출신인 나도 지명을 처음 들어봤던 대평. 아주 작은 동네 슈퍼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마을 토박이들이 살거나 일부는 빈집이었던 평화롭고 느리면서도 약간 쓸쓸한 느낌도 주던 마을. 그랬던 마을 풍경이 이렇게 대형 리조트가 들어서고 이런저런 카페, 게스트하우스, 피자 가게가 죽 늘어선 전형적인 관광지처럼 변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대평리의 변화는 지나치게 급격하고 극적인지라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달래주는 듯 박수기정만큼은 13년 전과 하나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눈발 속에서도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정방폭포, 소정방폭포 등 바다 절벽이 연이어 이어진 서귀포읍에서 나고 자란 내 눈에도 너무나도 근사해 보였던 박수기정. 천 년 전 원나라 병사들이 중산간 목장에서 키워낸 제주 조랑말을 실어나르던 모습부터 최근의 변화까지 비바람 풍상 속에서 묵묵히 지켜본 그 박수기정 앞에서 나는 머리 숙여 기도했다. 자연이 던지는 경고는 제발 올 한해 우리에게 준 시련으로 그만 끝내 주십사하고. 인간이 자연을 향해 저지른 악행이 아무리 많았다 하더라도, 이젠 제발.

 

 

# 다이버들을 향한 대평리 해녀들의 간절한 호소

 

대평에서 월평리 쪽으로 8코스를 역으로 걷기로 마음먹고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발은 바다를 향해 빗금 치듯 날리고, 멀리 형제섬과 송악산은 아스라하게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마라도와 가파도는 눈보라 속에 아예 모습을 감추어버리고. 해녀탈의장을 지나갈 즈음, 한 경고문이 내 발목을 붙들었다. 바닷가에서 흔히 보이는 행정기관이나 어촌계의 일반적인 경고문과는 사뭇 다른, 너무나도 간절하고 절박한 호소를 담고 있었다. 나는 그 호소문을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바당에 들어가는 다이버 분들에게 호소드립니다>

 

이 바다는 대평 어촌계 어민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저희는 황폐해져 가는 바다를 가꾸기 위해 각종 종패를 뿌리고 물갯깍 청소, 바다 정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바다는 계속 척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 늦은 밤에 다이버들의 무분별한 어획 채취로 인해서 어민들의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거기다 일부 다이버들이 고령의 바다 지킴이 어민들에게 폭언과 폭행까지 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곳은 대평 어촌계 어민들의 공동 양식장입니다. 무분별한 수중 해루질을 그만 멈추어 주십시오. 해녀들의 생계를 지켜 주십사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대평리 어촌계 드림

 

 

. 이런 일이 있었구나, 호소문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친한 해녀들에게 황폐해져 가는 바다에 대해, 해녀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새로운 재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환경 변화로 모자반이나 청각 같은 식용 해조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그 자리를 독을 품은 외국 말미잘이나 부유물이 채우고 있다든가, 양식장에서 예고 없이 방류되는 물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기도 한다고들 했다. 그런데 채취나 어로 활동이 금지된 스쿠버 다이버들이 감시의 눈이 소홀한 틈을 타서 한밤중에 해산물을 불법 채취한다니. 그것도 말리는 노인 지킴이들에게 폭언, 폭행까지 불사한다니. 피를 토하는 호소문을 내걸 만도 한 일이다.

 

 

물론 스쿠버 다이버들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아는 스쿠버 다이버 중에는 불법 채취를 전혀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애인처럼 사랑하는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서 들어갈 때마다 바다 쓰레기를 허구한 날 주워서 나오는 이도 있다. 마치 올레길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클린 올레 활동을 하는 올레꾼처럼. 진정 바다를 사랑한다면, 길을 사랑한다면 그 바다와 그 길에 널린 쓰레기를 치울 수밖에 없으리라. 남들이 버린 것일지라도, 누가 버렸는가를 탓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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