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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길위에서 띄우는 편지> 제7화 '기적 같은 삶에 또 한번의 기적이 동행하기를'
기사입력  2022/08/20 [05:16]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

       "한국난계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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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레길에서 만난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과  난과함께신문 발행인 김성진    ©김성진

 

기적 같은 삶에

또 한번의 기적이 동행하기를

7

 

길고 지루한 여름 장마가 계속되던 초여름 어느 날, 찬구 강미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귀포에서 초·중학교를, 제주시에서 여고를 함께 다녔던 동네 친구. 둘 다 오랜 서울살이 끝에 제주로 귀향한 뒤 올레길에서 다시 만난 미순. 늘 그랬듯 전화기 속 그녀의 목소리는 명랑한 종달새 같은 하이톤이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웃는 그녀의 전매특허 미소를 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그러나 뜻밖에도 내용은 심각했다. 병이 악화되어 이제부터는 다른 치료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러니 동행모임에도 앞으로는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제주올레 사무국에서 받아온 후원 신청서를 최대한 많이 채워서 전해주려 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다, 그동안 모아놓은 후원 신청서를 동행회장단에게 전해놓을 테니 연락이 오면 만나서 받으라는 이야기였다.

 

걱정하지 말고 병 치료에 전념하라고 당부하면서 전화를 끊고 나니 한동안 멍한 느낌이더니, 곧이어 갖가지 기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세월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극적인 소식을 몰고 나타났던 미순이었다. 미순과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 간호사, 나는 시사 매체의 정치부 기자. 우리는 둘 다 야근 특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극한 직업 종사자였고, 자주 만나기에는 가는 길이 워낙 달랐다. 동행하는 벗이었지만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둘 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 되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미순이가 십 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해서 그토록 기다리다 낳은 첫아이가 심각한 장애를 안고 태어났음을. 그래서 그 애를 제대로 돌보기 위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일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는 것을. 그 후, 수소문해서 그녀를 만났더니 아이의 장애는 예상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심장의 충격 결손, 구개 파열에 심각한 뇌성마비란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가 천사처럼 순수해서 오히려 자신을 정화 시킨다며 그 아이가 언제까지 자기들 곁에 머물지는 모르겠지만 떠나는 날까지 오롯이 그 아이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직장을 떠났노라고 미소 지었다. 결국엔 6년 만에 미순이가 천사라고 부르던 아이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고 그녀는 다시 적십자혈액원에 재입사해서 헌혈 홍보와 골수기증 분야의 일을 맡아서 맹렬한 직장여성으로 돌아왔다. 3년 만에 둘째 아이를 가진 그녀는 첫아기 천사가 엄마가 외로울까 봐 동생을 선물한 것 같다라고 기뻐했다.

 

그런 그녀가 1998년에는 미담의 주인공으로 언론에 등장해서 다시 한번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적십자혈액원의 한 간호사가 자신의 신장을 순천향대의 한 여대생에게 기증했다는 뉴스였다.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우리 여고 동창 미순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오랜만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할 수 있게 되었냐고.

 

그녀는 담담하게 내 업무가 헌혈과 골수기증을 홍보하고 권유하는 일이잖니? 그러다 보니 그 연장선상에서 자연히 장기기증에도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 그러던 중 한 순천향대 여대생이 애타게 신장기증해 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인간은 신장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그녀는 간절히 건강한 신장 한쪽을 바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지. 수봉 씨가 엄청 반대했지만 내 고집에는 끝내 손을 들고 말았지 뭐니

 

# 고향과 친구들이 내 수명을 늘려주었다

 

미순이를 다시 만나게 된 건 5년 전. 그녀가 고향 제주로 귀향하면서였다. 제주 출신 남편 수봉 씨가 이미 제주시 와산 근처로 귀농해서 혼자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데도 자기는 평생직장이 있고 친구들도 많고 문화적 기회도 풍성한 도시가 좋다면서 끝내 서울의 직장 생활을 고집하면서 월말 부부로 살던 미순이었다. 그녀의 귀향 이유가 궁금했다. 뜻밖에도 그녀는 신장 기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방암 판정을 받았고 수술과 항암치료로 완치 판정까지 받았으나 이번에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담당 의사는 1~2개월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란다.

 

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임상실험 중인 신약을 복용하면서 고향 제주에서 힐링하기로 결심하고 내려왔다는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네 책에서 봤는데 올레길이 치유의 길이라며? 그래서 내려왔으니 네가 책임져야 해라고 덧붙였다. 너무 명랑한 표정으로 말하는 미순을 보며 이야기를 듣는 내내 실감할 수가 없었다. 유방암에 걸렸던 것도 금시초문인데, 완치 판정 이후 다시 수술도 할 수 없는 폐암에 걸린 사실을 이처럼 명랑한 어조로 얘기하다니. 미순이의 파란만장한 삶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미순이는 집에 틀어박혀서 폐암을 끌어안고 씨름하는 대신에 그녀는 여고 친구들과 길을 걷는 쪽을 택했다. 그녀는 내 모교인 신성여고 21기 걷기 동호인 모임인 동행팀에 가입했고 서울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걷기에 동행했다. 본디 걷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모임인 동행팀은 자칭 오락부장, 홍보부장인 유쾌한 미순이의 합류로 날개를 달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서 올레길은 물론이고, 동백동산, 머체왓 숲길, 사려니숲길 등 제주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나도 동행팀의 걷기에 한차례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 길 위에서 그녀들은 자식은 물론 손주까지 둔 60대 초반의 아주망들이 아니라, 녹나무 우거진 교정에서 만난 그 시절의 소녀들로 돌아가 있었다. 길섶에 핀 들꽃 한 송이, 이끼가 잔뜩 낀 나무 둥치,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에도 일일이 눈을 맞추고 감탄사를 내지르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도시녀를 자처했던 미순이는 개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제주 찬양자로 변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나는 변절녀라고 놀려댔다.

 

# 5년 동안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았기에

 

7월 초, 서귀포 올레 센터를 찾아온 미순이가 내게 물었다. 길에서 너무나도 많은 행복을 누리고 건강도 지켜냈으니 길을 내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되갚고 싶은데 도움이 될 일이 없느냐고. 그러면서 꼬치꼬치 물었다. 425km나 되는 긴 길을 걸어보면 절로 감사의 마음이 든다고. 깨끗하게 유지 보수하고 관리하는 비용과 그 많은 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국제적인 연대를 추진하는 직원들의 월급은 어찌 다 충당하는가를. 나는 도내외의 많은 후원회원들이 꾸준히 도와주고, 다양한 기념품도 제작해서 팔면서 어찌어찌 꾸려나간다고 대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사무국 직원에게 후원회원 신청서를 되도록 많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곤 내게 눈을 찡긋하면서 어릴 적부터 내가 말솜씨 하나는 좋았잖아? 게다가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 홍보 업무하면서 더 갈고닦았잖아. 이제 제주올레 사무국 사정을 알았으니 기대하시라. 내가 올레 최고의 홍보 사원이 되어줄 테니.”

 

그녀는 자신의 공약을 실천에 옮겼다. 점점 쇠약해지는 몸을 이끌고서도 동행 모임에 참석해서 친구들을 하나하나 붙들고 올레 사무국의 사정을 들려주고 후원을 설득했다. 가뜩이나 올레길을 좋아하던 친구들은 자원봉사 후원팀장을 자처한 미순이 설명을 듣고 하나둘씩 후원 신청서를 작성했고, 그걸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마침내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자 회장에게 전해놓겠다고 한 것이었다.

 

실제로 미순이의 전화가 걸려온 일주일 뒤에 동행회원들은 20명의 후원회원 신청서를 들고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찾았다. 회장인 김효정은 내 손에 후원 신청서를 꼭 쥐여주면서 미순이가 아니었더라면 올레길을 항상 고마워하고 감탄하면서도 속 사정을 모르니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몰랐을 거라고, 미순이가 사무국과 동행팀을 이어준 가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 며칠 뒤 미순이가 입원한 제주대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그동안 몰라보게 수척해진 미순이는 난생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의사가 한두 달이라고 했는데 오년이나 살았으니 그냥 버텨낸 게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지냈으니 참으로 선물 같은 나날이었다, 고향인 제주와 걷기모임 동행이 그런 날들을 선물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탓에 극심한 통증이 자주 찾아온다면서도 내가 병원엔 워낙 익숙한 사람이잖니? 집처럼 편안해라고 농담하는 여유를 보였다.

 

요즈음 우리 걷기모임 동행의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소식을 들은 여고 동기 동창생들은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기적을 보여주었듯이, 다시금 기적을 보여달라고. 미순이가 그토록 좋아하던 올레길과 동백 동산길을 친구들과 다시 동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 길 위에서 전매특허인 입꼬리 미소를 날리면서 제주 자연을 찬미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나라로 간 천사아들과의 해후를 아직은 미뤄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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