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난계 變해야 산다"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蘭 역사와
(2021.4.6일 현재 14.367점의 난관련 자료를 기록보존하고 있습니다)
항용유회(亢龍有悔)
처서를 앞두어서인지 찜통더위라는 말을 무색케 했던 올여름 더위도 한발 물러서는 것 같다. 더위가 주춤하는 사이 매미가 득세를 했다. 그악스레 울어재끼는 말매미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더위가 말매미 소리에 학을 떼어 꼬리를 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매미 소리가 절규라 여긴 지 오래다. 허물 벗고 울기까지 들인 공이 얼마인데 한 열흘 살다 죽을 제 설움에 겨워 절규에 가까운 피울음을 토한다고 생각해서다.
극에 달한 더위며, 절규하는 매미소리는 항용유회(亢龍有悔)를 떠올리게 했다. 항용유회는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것으로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도 지위가 높아질수록 고뇌가 많고 영욕도 많아진다. 부귀영화가 극에 달하면 쇠락만 남으니 모든 행동거지를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공자는 ‘항룡은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자칫 민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왕자의 난이며, 광복절 특별사면이며 항용이 된 재벌총수들의 얘기로 지면이 뜨겁다. 부정으로 일관된 그들의 치부수단이었기에 하나같이 떳떳치 못하고 부끄러움 일색이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손수 제작한 인상석에 물을 주면서 시름을 달랜다. 한 십년 돌에다 물을 주어 세월을 입히다 보니 제법 이끼가 피어나고 창연(蒼然)한 기운이 감돌아 그 아름다움에 흠뻑 젖는다. 돌에다 세월을 입힌다는 얘기는 지난 봄 모 방송국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하였더니 의미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상석 중 ‘알렉산더대왕’이 있다. 갑옷처럼 생긴 몸통돌에 근엄한 표정의 인상도 일품이라 자주 찾아 문안을 드린다. 인상석 ‘알렉산더 대왕’은 지난해에 거제문화에술회관에서 개최된 ‘인상석전’에 출품되어 성가를 높이기도 했다.
알렉산더는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등과 함께 가장 많은 땅을 정복한 대왕 중 한 사람이다.
기원전 334년경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 유럽,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걸쳐 많은 국가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은 스무 살 나이에 왕이 되어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자 마지막으로 인도를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10년 이상 계속된 원정생활에서 계속되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나이 33세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는 부하들에게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무덤 밖으로 내놓고 묻어주게.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네”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겼다.
이를 두고 한 철학자는 “어제는 온 세상도 그에게 부족했으나 오늘은 두 평의 땅으로 충분하네. 어제까지는 그가 흙을 밟고 다녔으나 오늘부터는 흙이 그를 덮고 있네”라고 인생의 무상함과 空手來 空手去를 설파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유언으로까지 알려주려 했던 빈손이련만, 사람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나기 때문인지 한번 쥔 것은 놓지 않으려고 안달이고 더 쥐기 위해 혈안이다.
근간에 두 사람의 죽음을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은 북경에서 유명을 달리해 시신이 서울로 운구된 CJ그룹 이맹희(84세) 명예회장이고, 또 한 사람은 미국인 사업가 레니 로빈슨(51세)이다.
레니 로빈슨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29번 도로의 배트맨’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14년 간 ‘배트맨’ 차림을 하고 선행을 베풀어온 그가 자선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고속도로에서 배트모빌로 꾸민 람보르기니 자동차가 멈추자 살펴보려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자동차 번호판 대신 배트맨 배지를 달고 다니다 매릴랜드주 29번 도로에서 적발되면서 29번 도로의 배트맨이란 별명을 얻었다. 3자녀의 아버지로 청소업체를 운영하는 로빈슨은 아들을 위해 배트맨 복장을 했다가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지난 14년 동안 매달 1~2곳의 어린이 병원, 학교, 자선행사장을 다니며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위로했다. 천사 ‘배트맨’ 아저씨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적으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한다.
수년 전 창업주의 차명 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삼성가의 소송이 이목을 끌었다. 한 쪽의 소송비용 중 인지대가 127여억 원이란 보도가 있었다.
그 소송 당사자의 한 사람이 고인이 된 이맹희 명예회장이다. 인지대가 127여억 원이면 본 소상가액은 모르긴 해도 수 조원은 되지 싶다. 그가 생전에 기부를 하고 살았는지는 시골 무지랭이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인지대의 절반 정도만 기부했어도 애도의 물결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애도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옛 성현의 말씀에 老人生万事非 憂患如山一笑空이란 말이 있다. 늙어서 생각하니 만사가 아무 것도 아니며 걱정이 태산 같으나 한 번 소리쳐 웃으면 그만인 것을. 어차피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인데 재산모으기에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인지, 더위를 먹은 탓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전국 단위의 난 단체장이면 난계로 치면 항용이라 하겠다. 겸손은 고귀함보다 더 고귀하다 했으니 항용유회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매미소리를 피해 옮긴 자리에 고추잠자리가 어지럽게 날고 있다. 마치 부질없는 인간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