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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조 칼럼> 난(蘭)과 난인(蘭人) 간의 관계
기사입력  2020/02/22 [05:22]   정계조 국제동양란교류협회 회장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2020.2.21일 현재 : 난관련 자료 11.831건이 DB화 되어 있습니다)

 

 



 

 

 

 

 

 

 

 

 

 

 

 

 

 

 

 

 

 

 

 

 

 

 

()과 난인(蘭人) 간의 관계

 

인간은 본래 외로움을 타는 존재이다. 복잡하고 바쁘다 보니 사람과의 어울림이 여유롭지 못하고, 생활이 여러모로 빡빡하니 그 정도가 심한 듯하다. 더구나 2인 혹은 1인 가족이 늘어나고 트렌드의 빠른 변화로 세대 간은 물론 타인 간에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생활 속에서 정(情)을 나누는 짝을 찾게 된 것이다.

 

각자가 좋아하는 동‧식물을 찾게 되었고, 반려식물‧반려동물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반려식물은 반려동물에 비하여 다양하고 관리하기가 편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 기쁨을 잘 안다. 사람은 아름다운 꽃이나 식물을 보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뇌파가 활발해져 스트레스가 풀리고 불안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반려식물을 잘 묘사한 영화 ‘레옹’에는 주인공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식물 아글라오네마(Aglaonema)가 등장한다. 레옹은 아글라오네마를 화분에 담아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고 잎을 닦아 주면서 정성껏 가꾼다. 집을 옮길 때마다 갖고 다니는 분신(分身)이다.

 

레옹은 아글라오네마를 ‘제일 친한 친구’라고 부른다. ‘뿌리가 없는 것이 나와 같다’고 말한다. 레옹이 죽자 소녀 마틸다는 아글라오네마를 교정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한다. 난(蘭)은 오래 전부터 단연 반려식물의 으뜸이고, 난인에게 난(蘭)은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식물이다.

 

난인(蘭人)은 난(蘭)을 곁에 두고 늘 난과 함께 생활하면서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난인들은 난과 보내는 시간이 많고, 난실에서의 난인은 때 묻지 않은 순진한 아이의 소꿉놀이와 같이 천진스럽다. 난인은 난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며 보살피고 애정을 쏟는다.

 

난인과 난은 매일 만나는데도 늘 나눌 이야기가 있다. 난실에서 물끄러미 난을 보고 있노라면 이야기는 난 잎을 타고 흐르고, 살며시 속삭이며 다가온다. 아무도 없을 때는 소리 내어 말을 나눈다. 난인들은 난을 가족보다 더 챙기다 보니, 배우자로부터 난(蘭)하고 사느냐는 질투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난인에 있어 난은 생활이요 인생이다.

화가에게 있어 그림이 인생이고 작곡가에게는 음률과 곡조가 인생인 것과 같다. 진정한 난인은 자신의 인생에 난을 담는 사람이다. 난인은 난실에 들어서면 이쪽저쪽을 다니면서 난 하나하나를 찬찬히 챙긴다.

 

난의 반김을 놓칠세라 일일이 눈도장을 찍고, 만족함의 인사를 끄덕끄덕 한다. 난잎의 생기가 조금이라도 떨어진 난은 금방 알아차리고, 가엽어하고 걱정 한다. 잘 자라고 있는 놈은 칭찬을 하면서 난분을 괜히 들었다 놨다하고, 귀여운 아이 머리 쓰다듬듯 난잎을 손으로 쓰다듬기도 한다.

 

수백 아니 천분이 넘는 난 화분도 난 하나하나의 상태뿐만 아니라 놓인 방향까지도 정확히 기억한다. 누군가가 난실을 방문했을 때에는 자식 자랑하듯 난 자랑을 여념 없이 널어놓는다.

 

난인들은 난과 생활하면서 풍요로운 인생을 즐긴다.

난인이 환희에 차 있거나 사랑에 빠져 있거나 경쾌한 기분과 만족감에 빠져들 때는 대부분 난과 함께 있을 때이다. 난인들이 난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의 감동을 갖는다면 그 순간 난인들은 난의 세계에 몰입해 있는 것이고 난과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다.

 

난을 접한 사람 중에 유독 난에 빠져들고 평생을 변함없이 같이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난과 특별한 인연을 타고난 사람이고, 실제로 난을 평생의 반려식물로 삼아 깊은 사랑을 나눈다. 그래서 난을 ‘인연초’라고 부르는 것 같다.

 

애란생활에는 많은 즐거움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10가지를 필자는 ‘난인 10락(蘭人 10樂)’이라고 말한다. 살림이 늘어나듯 난(蘭)을 모아가는 재미, 난담(蘭談)을 만들고 나누는 즐거움, 산에 가서 난을 채집하는 즐거움, 난에 물을 주며 생명체를 키우는 재미, 신아(新芽)를 감상하는 재미, 난잎을 감상하는 재미, 난 꽃을 피우고 감상하는 재미, 난을 분양하는 즐거움, 난꽃 축제의 즐거움, 난을 배워가는 즐거움 등이다. 그 외에도 난인에 따라 각자가 갖는 재미는 실로 많고 다양할 것이다.

 

 

난인은 생활이 곧 예술이다.

난과 난인 사이에는 무궁무진한 예술적 교감이 이루어진다. 아름답고 멋있는 자태와 훌륭한 덕성을 가진, 신비하고 매력적인 난을 그 본성으로 즐긴다. 난인은 난 꽃을 앞에 놓고 마주앉아 몇 시간이고 감상하는 때도 있다.

 

단순한 미적 감상을 넘어 본성에 대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난초를 앞에 놓고 차 한 잔 하는 것은 영원과 마주 앉은 무욕의 시간이고, 정갈한 마음과 삶에 대한 깨달음의 공간이다.

 

애란생활은 난의 예술적 본성을 찾고 공감하며 즐겨야지 돈으로 생각하는 순간 그냥 풀에 불과하다. 난인들은 난을 돈으로 거래하지만 단순한 거래물건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난을 분주해 분양할 때도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보낸다.

 

난인은 난이라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다.

난인은 난과 생활하면서 사색을 많이 한다. 사색은 마음을 살찌게 하고 영혼을 맑게 한다. 난과 생활하다보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애뜻한 정을 나누게 된다. 때로는 눈물이 핑 돌 때도 있다.

 

난은 인간의 원예식물로서 자신을 내 던져 모든 것을 내보이기에, 난인은 난을 경건하게 대하고 난의 본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감지능력을 벗어난 존재의 이면을 알아내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난인들은 난과 생활하면서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나누고 대화 한다. 난인의 근심 또한 난잎에 걸려서 운다. 난을 오래 대하다 보면 난도 일종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난인들은 난을 대할 때, 거짓과 꾸밈이 없는 진실만으로 주의 깊고 조심스럽게 다룬다.

 

난은 난인에게 중용의 도를 끊임없이 가르친다.

중국 명나라 때 단계자(簞溪子)가 난의 성향 등에 관하여 백가(百家)의 이야기를 종합한 ‘난역십이익(蘭易十二翼)’을 보면 난 배양에는 과하고 부족함이 없는 중용을 가르치고 있다.  

 

난과 생활을 오래한 난인은 난을 대함에 욕심을 자제할 줄 알고, 인연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난이라는 생명체의 존엄과 외경에 고개 숙이는 자세가 자연 몸에 베인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세심히 살피고, 난의 내면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참다운 난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진정한 난인들이 줄어들고 난문화가 퇴색되는 분위기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난인들이 많다. 난문화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난에 대한 신비감도 점차 떨어지고 난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점차 흥미를 잃어가는 것인가?

 

초창기 난인들이 가슴 두근거리며 난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내던 그 문화가 그립다. 진정한 난인이란 난을 많이 소장하거나 난을 잘 기르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난을 사랑하며 난과 생활이 몸에 배여서 난의 품성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난과 오래토록 생활하면서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사람이다. 지금의 난문화를 보면, 판에 박힌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 다양한 표정이 있듯이 애란생활에도 일률적인 난인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담긴 애틋한 멋과 운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문화와 예술의 특징은 자연과의 접화(接和, grafting, 이질적인 대상과의 단순한 공존이 아니라 이질성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관계)로써 이루어진다. 접화는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접화는 주종이 없는 균등한 통합이다.

 

한국인에 있어 자연과 인간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생의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다. 한국음식의 기본인 된장, 김치 등은 자연과의 접화가 잘 이루어진 음식이고, 한국의 집은 풍수가 좋은 곳을 찾아 별도 정원이 없이 자연 그 자체를 정원으로 삼아 지었다.

 

한국인은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서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고 누리는 사람이다. 따라서 난인은 난을 단순히 소유하거나 지배‧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난(蘭)이라는 자연과 접화군생(接和群生, 신라시대 최치원 대학자가 <난랑비서(鸞郎碑序)>에서 한 말, 만물과 접하면서 교화하고 조화된다는 뜻)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라시대 물계자는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본성대로 존재하기 때문이고, 인간이 추한 것은 자기다운 본성을 잃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얼을 중시하였다. 난인들은 난과 함께 생활하면서 난과 서로 상통하고 자연과 인간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고 타협하여 묘합(妙合)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연의 본성을 배우고 자신의 본성을 복원해 가는 한편, 단순한 미적 추구 이상의 풍요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자연의 내면을 이해하는 사람이 인간도 잘 이해한다. 난인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자아발견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된다.

 

도시생활에서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혜택과 삶에 대한 여유와 미덕도 되찾게 된다. 애란생활을 통하여 이러한 갈망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이 난과 생활에서 얻는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난계(蘭界)가 난의 품성을 배우고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훌륭한 난인이 많이 나올 것이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자연의 섭리를 체득하면서 난과의 끊임없는 교감이 없고는 어찌 애란의 즐거움을 알겠는가? 사람들이 생명력을 가진 자연마저도 하나의 재원으로 여김으로써 자연 또한 이용하고 착취해야 할 상품, 정복하고 지배해야할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앞에서 말한 올바른 난인의 품성과 생활이 잘 베이고 녹아든 난문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것은 나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바람직한 난문화와 난인들의 융성은 올바른 가치와 신념, 그리고 노력 속에서 이루어 질 것으로 본다.

 

이것은 난인들의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절실한 소명의식에서 출발해야 하고, 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난인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난인은 난인다울 때가 가장 아름답다. 나도 더욱더 난에 푹 빠져 풍요로운 인생을 즐기고 싶다.

 

● 정계조 님은 

부산대학교 대학원(경영컨설팅학 박사)을 졸업하였으며, 1985년에 난에 입문하여

(사)부산난연합회 이사장 역임, 국제동양란교류협회 설립, (사)한국난재배자협회 자생란경영회 회장을 맡아 난자조금 설립, 단행본 『한국춘란 품종과 배양』발간. 한국난교육아카데미 운영 등 난문화계의 일선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현재 국제동양란교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세무법인 正安의 회장/대표세무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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