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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미물의 예지
기사입력  2019/10/19 [12:56]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2019.10.19일 현재 : 난관련 자료 10.518건이 DB화 되어 있습니다)

 

 

▲ 백화등의 단풍드는 모습     ©김성진

 

미물의 예지

 

추분이 코앞이다.

만물을 주눅 들게 하던 폭염의 위세가 주춤하는 사이 태풍이 들이닥치고 가을장마의 시작을 알리더니 나흘 간의 추석연휴가 후딱 지나갔다.

 

잔광을 헤아리는 심사 때문인지 근간에 들어 빠른 세월을 실감하곤 한다. 세월은 나이에 비례하여 흐른다. 1살짜리에겐 시속 1km로 가고, 30살이면 30km, 60살이 되면 60km, 80세가 되면 인생 속도는 80km. 73km로 내달리는 나의 인생속도, 가속도까지 붙었으니 어찌 빠르다 하지 않으리오,

 

추석연휴 직전에 친구의 빈소를 다녀왔다. 그와의 지난 반백년을 뒤돌아보며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새삼 느꼈다.

 

구극(駒隙)이란 말이 있다.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는 뜻으로, 세월과 인생이 덧없이 짧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백구지과극(白駒之過隙)에서 비롯했다. ‘자는 틈 극자다. 이는 장자의 지북유편(知北遊篇)과 사기 유후세가(留侯世家)가 출처다.

 

시간은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가고 1년이 가고 10년이 가고 그러다 반백년이 쏜살같이 잘도 흘러간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기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애환 속에서 종착역을 향하여 줄달음친다. 세월이 삶을 갉아먹는 무서운 존재인 줄도 모른 채 말이다.

 

한편으론 장자의 한탄과는 달리 옛사람들은 느긋하게 살았던 것 같다. 하루를 열두 토막으로 나누었는가 하면, 100각으로도 나누었다. 그래서 오시(午時)에 만나기로 하였다면 분초를 다투는 오늘날 우리와는 달리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 두 시간이나 여유를 두었다.

 

간절한 기다림을 두고는 일각이 여삼추라 했다. 일각을 시분으로 환산하면 14.4분에 해당한다. 15분이 채 안되는 기다림을 두고 3년 같다고 하였으니, 시간에 관한한 상당히 주관적이라 하겠다.

 

아름드리 팽나무에서 매미가 운다. 어찌 그리 하루 종일 울어대는지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조선후기 학자요, 정치가였던 허목(許穆),

 

바람을 마시고 사니 진정 마음이 비었겠네.

이슬만 먹고 산다니 몸 또한 청초하겠네.

무슨 일로 진작 이 가을 새벽부터

그리 하염없이 울고 있는가.

 

라고 읊었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매미는 그저 게으르고 팔자 좋은 여름 곤충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싶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옛 선인들은 촌음을 아껴 삶을 확장해나가는 매미에게서 인생살이에 관한 윤리적 교훈을 얻었다. 만원권 지폐에는 곤룡포를 입은 세종대왕께서 매미날개 형태의 익선관(翼蟬冠)을 쓴 화상이 그려져 있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익선관을 쓰고서 매미의 오덕을 실천하는 현군의 사명을 다해야 했다.

 

진나라 시인 육운(陸雲, 232-303)은 매미를 지극한 덕을 갖춘 벌레(至德之蟲)로 한선부(寒蟬賻, 늦가을 매미를 노래하다)에서 오덕(五德: , , , , )을 갖춘 것으로 묘사했다.

 

두상유관대, 시문(頭上有冠帶, 是文)머리에 관대가 있으니 문인의 기상을 갖춘 것이요

함기음로, 시청(含氣飮露, 是淸)천지의 기운을 품고 이슬을 마시니 청정함을 갖춘 것이요

불식서직, 시렴(不食黍稷, 是廉)곡식을 먹지 않으니 청렴함을 갖춘 것이며

처불소거, 시검(處不巢居, 是儉)거처함에 둥지를 만들지 아니하니 검소함을 갖춘 것이요

응시수절이명, 시신(應時守節而鳴, 是信)때에응하여 자신의 도리를 지키어 울어대니 신의를 갖춘 것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매미의 보통 수명은 6년 정도이다. 6년 중 511개월 동안 땅속에서 애벌레로 살다 6년째가 되는 여름 어느 저녁 무렵 땅위로 올라온다. 곤충의 경우 유충이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는 변태과정을 우화(羽化)’라 하는데, 드디어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지상에 올라온 매미는 가까운 나무 등걸을 타고 오르다가 5번째 허물을 벗고 비로소 매미가 된다.

 

이런 삶의 현란한 변태 과정 때문에 급기야 매미는 불사와 재생, 나아가 탈속과 해탈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매미가 되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줄 알기에 처절할 정도의 몸부림으로 남는 삶을 노래한다.

 

우리가 지겨워하고 권태롭게 여기는 오늘이라는 날이 얼마나 소중한 날인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려는 듯이 울어재낀다. 그런가 하면 올곧은 선비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대찬소리와도 같다.

 

개운치 않은 고관의 임용으로 해서 나라가 시끄럽다. 팔자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겨진다고 하지 않던가. 미물의 삶에서 얻는 교훈이 어찌 작다 하리오.

 

춘란이 튼실해지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신발끈을 조이라는 매미의 성화가 무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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